'빠'와 '까' 에 대한 단상

메모/낙서글/명언/트위터_페이스북 2015/03/26 11:47
나는 소위 말하는 '빠' 나 '까' 는 비이성적이기 쉽다고 생각한다. 왜냐면 예를들어 나는 AA빠다 라고 하면 AA가 그냥 좋다는 말이기 때문이다. 나는 BB까다 라고 하면 나는 BB는 그냥 안좋다라는 말이다. 즉 여기에는 이성이 끼어들 자리가 없다.

이성이 끼어들 자리가 없는 곳에서는 폭력이 만들어 진다. 나는 AA빠니깐 AA가 잘못한 것은 보이지 않는다. AA는 그냥 무조건 좋은 것이다. BB까니깐 BB가 아무리 좋은 것을 보여주어도 BB는 그냥 나쁘다. 이런 논리는 결국 지역,인종,성별 등의 온갖종류의 편견을 양성하고 그리고 아무런 이유 없이 단지 그 범주에 있는 것만으로 폭력을 행사 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기가 수용하고 싶지 않는 논리를 받아들이지 않으려 한다. 아이디어가 이미 머리깊이 오래전부터 심어져있고 시간을 통해 재배되고 길러지고 커져왔기 때문이다. 그래서 수용하고 싶지 않는 불편한 것이 들어왔을때 놀라운 방어시스템이 가동되어 이성이 사라진다. 아니 이성적으로 보여지고 싶은 마음에 온갖 논리들을 찾아내어 합리화를 한다. 합리화.

합리화를 하는 것을 알면서도 합리화를 한다. 아들러의 말처럼은 수용하지 않기로 결정했기 때문이다. 많은 역사적 실증에서 보면 믿기지 않게도 인간은 괴로움을 선택하기도 한다.

그런 부분이 이루어질 수 없는 부분이 수학으로 가깝게 가는 부분이다.
그래서 궁극적으로 수학이 아름답다. 왜냐면 내가 쓰는 기호가 다른 사람에게도 아무런 편견없이 그대로 전달되어져야 그것이 수학이 되기 때문이다.

수학과 점점 멀어질수록 즉 자신의 관점에 따라서 달라지는 것들에 이를수록 우리는 곡해하기 시작한다. 이것이 잘못된 신념이나 신앙에 이르르면 이성은 존재하지 않고 맹신이 되어서 모르쇠가 된다.

그런의미에서 지두의 가르침은 그런의미에서 모든 권위와 모든 메모리를 버려야 된다는 것이다. 즉 자신이 쌓아올린 경험과지식이 편견으로 작용되면 안된다는 것이다. 투명하게 이성적이 되기 위한 수학처럼 투명하게 철학을 바라볼 수 있으려면 권위에서 벗어나야 하고 경험과 지식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이야기이다.

부연:
과거의 경험과 지식은 현재를 살아가고 미래를 설계하는데 매우 중요하다. 여기서 이야기하는 것은 그것이 우리의 이성을 막는 도구로 쓰일때는 의미한다.
또는 과거의 돌이킬 수 없는 사건들을 되짚으며 현재에 살지 않고 과거의 괴로움에 사는 경우를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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